- 『어린이가 존중받는 나라』
- 운영자 2025.5.3 조회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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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어린이날입니다. 어학사전을 찾아보면 어린이의 뜻은 ‘어린아이’를 대접하거나 격식을 갖추어 이르는 말’이고, 어린아이는 ’나이가 적은 아이‘라는 뜻입니다. 대부분 어린이와 어린아이를 혼동할 때가 많은데 그 의미는 매우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어린이는 존칭어입니다. 그리고 어린이라는 단어는 1921년에 방정환 선생에 의해 새롭게 만들어진 단어입니다. 선생은 일본 유학을 마치고 1921년 서울로 돌아와 어린아이들에 대한 부모의 각성을 촉구하기 위해 전국을 돌며 강연을 하는 중에 ‘어린이’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만들어 늙은이, 젊은이와 대등하게 격상시켰습니다. 또한 한국 최초의 순수 아동잡지《어린이》(1923)를 창간하고 최초의 아동 문화운동 단체인 색동회를 조직하여 그해 5월 1일을 어린이날로 지정했습니다. 어린이날은 1927년에는 날짜를 5월 첫 일요일로 변경하였고 1945년 광복 이후에는 5월 5일로 정하여 행사했으며, 1961년에 제정, 공포된 「아동복지법」에서는 ‘어린이날’을 5월 5일로 하였고, 1973년에는 기념일로 지정하였다가 1975년부터는 공휴일로 제정(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하였습니다.
어떻게 보면 어린이날을 따로 정했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어린아이들이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했었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평소 어린아이들이 존중받는 사회라면 굳이 어린이날을 만들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남아선호 사상이 강할 때는 여자아이들은 제대로 교육도 받지 못했습니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전통적 한국 사회는 어린아이들을 어른의 소유물 정도로 생각해서 무시하고, 학대하는 분위기가 팽배했습니다. 부모나 어른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쉽게 매를 들고, 정서적으로 언어적으로 깊은 상처를 주었습니다. 문제는 요즘도 이런 일들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신문이나 방송에 보도되는 아동 학대 사건이 그 정도면 실제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학대는 엄청나리라고 예상할 수밖에 없습니다. 부모에게 절대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약점을 이용해 내 자식은 내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저급한 인권 의식이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대한민국뿐이 아닙니다. 수많은 국가의 어린이들은 존중은커녕 노동 현장에 끌려 나가 제대로 된 보수도 받지 못한 채 끔찍한 착취를 당하고 있습니다. 결국 어린아이가 존중받지 못하는 사회는 아직도 미개한 사회이고, 어린아이를 존중하지 않는 가정도 아직 미개한 집단에 불과합니다. 존중이 존재하는 가정이 행복하듯이, 존중이 존재하는 나라가 선진국입니다.
예수님은 어린이들을 존중했습니다. 말씀을 전하시다가 어린이를 보시면 안아도 주시고, 축복도 해주셨습니다. 심지어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아이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눅 9:48)하는 것이라고 선언하실 정도였습니다. 예수님은 어린아이들 뿐 아니라 모든 사람을 존중하셨습니다. 사회적인 약자도, 육체적인 약자도, 정신적인 약자도 예수님께는 더 이상 약자가 아니었습니다. 심지어 손가락질받던 사람들조차도 예수님께는 존중받을 수 있었습니다. 세상에 내 마음대로 학대하고, 무시해도 되는 사람은 없습니다. 특히 약자여서, 소수여서, 부족해서, 연소해서 업신여기는 것은 절대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 그중에서도 사회적 약자를 대하는 태도가 그 사람의 믿음과 인격의 수준임을 예수님께서는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존중이 존재하는 사람의 믿음은 생명력이 있습니다. 약자를 존중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도 당신을 존중하지 않을 것입니다. 당신은 하나님 보시기에 연약한 자이기 때문입니다. 스스로에게 질문하십시오. 나는 존중하는 사람인가? 특히 나보다 약한 자를 존중하고 있는가?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이 바로 당신의 믿음이요 인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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