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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우 목사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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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그랬을까?』
운영자 2025.5.10 조회 46

  가끔 저의 정치 성향을 궁금해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파란 쪽인지 빨간 쪽인지를 알고 싶은 거죠. 저는 어느 쪽도 아닙니다. 아니 어느 쪽에도 속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투표할 때마다 고민입니다. 기권은 주권을 포기하는 것이니 누군가에게 표를 주긴 줘야 하는데 그 결정이 쉽지 않습니다. 저는 투표할 때 후보자와 관련된 우편물을 매우 꼼꼼히 읽는 편입니다. 실현 가능한 공약을 하고 있는지, 지금까지 그의 걸어온 길은 어땠는지 등등을 토씨 하나 빼지 않고 자세히 읽은 후에 투표할 사람을 정합니다. 아무 생각 없이 색깔에 따라 표를 던지면 편하겠지만 그건 아무래도 내키지 않습니다.

 

  제가 어느 쪽에도 속할 수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파란 쪽이나 빨간 쪽이나 기준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 집단이기 때문입니다. 가장 확실한 예가 바로 대법원의 이재명 대표 파기 환송 판결에 대한 반응입니다. 유죄 취지를 담아 고등법원으로 돌려보낸 이후에 양 진영은 매우 다른 정반대의 반응을 보였습니다. 파란 쪽은 사법 대란이다, 대법원장이 정치 쿠테타를 일으킨거다 등등의 과격한 발언들을 쏟아냈습니다. 특히 대법원에서 그렇게 빨리 판결을 내릴 수 있는 거냐며 사법부와 보이지 않는 기득권이 손을 잡은 결과라고 반발하고 있습니다. 대법원장 탄핵하고 청문회를 열어서 명명백백하게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도 주장하고 있습니다. 반대로 빨간 쪽은 2심 재판을 서둘러 대통령 선거 전에 결론이 나와야 한다, 범죄자가 어떻게 대통령이 될 수 있느냐며 날을 세우고 있습니다. 대법원이 사법 정의가 살아 있다는 걸 보여준 역사에 길이 남을 판결을 했다고 추켜세우고 있습니다. 이대표는 유죄 판결을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니 스스로 대통령 후보에서 사퇴할 것을 촉구한다며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습니다.

 

  여기서 제가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대법원이 반대로 신속하게 이대표의 무죄를 확정하는 판결을 했다면 그래도 그랬을까, 그래도 지금과 똑같은 반응을 했을까입니다. 물으나 마나 당연히 똑같이 반응했겠죠. 주장의 색깔만 바꿔서요. 파랑의 주장을 빨강이 하고, 빨강의 주장을 파랑이하고 있을 겁니다. 파랑은 지금같이 사법쿠테타라고 공격하는 대신 역사에 길이 남을 명판결이라며 엄지척을 할거구요. 빨강은 사법부가 정치 영역까지 침범해 대한민국의 미래를 암울하게 만들었다며 대법원장 청문회를 밀어 부쳤겠죠. 그래서 제가 파랑이든 빨강이든 어느 쪽에도 설 수 없다는 겁니다. 선택적 정의는 정의가 아니니까요. 내 편만 옳다는 편향적 정의도 정의가 아니니까요. 그때 그때 달라지는 정의는 그저 거짓일 뿐이니까요. 자기 편의 잘못을 지적하지 못하는 정의는 죽은 정의이니까요. 우리 편이니까 눈감아줘야 한다는 정의는 고장난 정의이니까요. 나와 의견이 다른 상대방을 악마화하는 정의는 사악한 정의이니까요.

 

  그래서 크리스천이 살기 참 어려운 세상입니다. 아니 살기 어렵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아니 이미 살기 어려웠어야 합니다. 휩쓸려 가는 정의가 아니라 흔들림 없는 정의의 삶을 살아야 할 책임이 있기 때문입니다. 크리스천은 정치에 참여하지 말라는 말이냐고요? 아닙니다. 해야죠, 참여해야죠. 그런데 적어도 크리스천다움만큼은 잃지 말라는 말입니다. 상대방을 향한 분노에 휩쓸리지 말고, 미움을 당연하게 여기지 말고, 좋은 게 좋은 거라며 믿음의 선을 넘는 정책에 눈감지 말고, 나라와 민족을 위해 간절히 간절히 기도하는 것부터 하라는 말입니다. 파랑이나 빨강이 구세주가 아니라 주님이 구세주임을 잊지 말라는 뜻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림 없었던 주님처럼 그래도 그랬을거야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야 참 크리스천임을 똑똑히 기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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