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홍묵 권사님을 추모합니다』
- 운영자 2025.12.20 조회 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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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권사님의 소천 소식을 듣는 순간 믿을 수 없었습니다. 권사님께서 소천하실 거라는 생각은 조금도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지난 주일에도 제 사무실에 오셔서 2026년 수첩과 달력 선물을 주셨습니다. 매년 이렇게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렸을 때 환하게 웃으시던 그 모습이 아직도 생생한데 그렇게 홀연히 세상을 떠나시다니요. 제가 2013년 창립기념 임직 예식 때 베드로 회원들에게 큰절을 올리면서 제가 은퇴하기 전에는 아프지도, 돌아가시지도 말라고 간곡히 부탁을 드렸지만 흘러가는 시간 앞에는 어쩔 수 없나 봅니다. 권사님은 방배동 교회 시절부터 꾸준히 교회를 섬기셨습니다. 부드럽고 따뜻한 심성이셨기에 모든 사람에게 인정과 존경을 받았습니다. 워낙 건강관리를 잘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던 터라 우리 곁에 오래 함께 계실 분이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우리 곁을 떠나니 참 황망한 마음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 오는 것도 또 세상을 떠나가는 것도 인간의 영역이 아니니 그저 하나님의 뜻에 따를 수밖에요.
인생의 마지막은 죽음입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은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죽음이 두렵기 때문에 늙어가는 것도 두려워합니다. 운동으로, 보약으로, 의료기술로 수명을 늘려보려 노력한 결과 정말 평균 수명은 길어졌습니다. 그러나 죽음을 이길 수는 없습니다. 운명적으로 한 번 태어난 사람은 한 번 죽어야 하니까요. 그런데 죽음이 다 같은 죽음은 아닙니다. 장례식이라고 다 같은 장례식은 아닙니다. 목사인 저는 장례 예식을 인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과정에서 두 종류의 장례식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눈물만 있는 장례식과 눈물과 함께 소망이 있는 장례식. 한 사람의 죽음은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슬픔입니다. 특히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보낸 가족들은 흐르는 눈물을 참을 수 없습니다. 장례식의 눈물은 고인을 다시는 볼 수 없다는 데서 출발합니다. 영원한 이별이기 때문입니다. 전통 장례식 중 매장지로 향하기 위해 상여가 집을 떠나는 상례의 절차를 발인식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상여가 떠나기 전 축관(제사 때에 축문을 읽는 사람)이 “영구의 수레가 이미 준비되었으니 곧 유택으로 갑니다. 이에 떠나보내는 의식을 차려 영원한 이별(영결 永訣)을 고합니다”라는 글을 읽습니다. 발인식을 영결식이라고 부르는 이유입니다. 영원히 다시 볼 수 없기에 장례식 내내 눈물만 흐를 뿐입니다.
하지만 눈물 속에 소망이 있는 장례식도 있습니다. 죽음을 영원한 이별로만 보지 않고 잠시의 이별로 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크리스천의 죽음을 ‘잔다’고 표현했습니다. 저녁에 잠자리에 든 후 아침에 일어나듯이 죽음 이후 천국에서 다시 깨어난다는 의미입니다. 지상의 장례식은 영원한 생명으로 새롭게 시작하기 위한 출발점이 되는 것입니다. 천국에서 인생의 모든 짐을 벗고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영광스러운 삶을 살기 시작했으니 영원한 이별이 아닙니다. 언젠가는 다시 만날 소망을 품고 고인을 보내기에 영결식이 아니라 천국환송식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다시 만날 소망이 확실하기에 눈물 속에서도 소망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김홍묵 권사님의 장례식이 바로 그런 천국환송식이었습니다. 권사님의 소천이 여전히 아쉽고 안타깝지만 언젠가는 그 천국에서 다시 만날 수 있기에 슬픔 속에서도 소망을 잃지 않겠습니다. 김홍묵 권사님의 가족들과 권사님의 소천을 안타까워하는 모든 성도에게 하나님의 위로가 넘치시기를 기도합니다. 인간적으로는 한없이 섭섭하지만, 천국에 입성하신 권사님을 생각하며 소망 가운데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편히 쉬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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